[논평]
유산유도제 도입, ‘불합리’ 인정만으로 면피되지 않는다.
이재명 대통령과 민주당은 입법 방기를 중단하고 즉각 응답하라.
지난 19일 성평등가족부 대통령 국정업무보고에서 임신중단 약물(유산유도제) 도입 문제가 논의되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현장에서 유산유도제가 이미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음에도 정부가 이를 방치하고 있는 현실의 불합리성을 직접 지적했다. 대통령이 정부의 ‘방기’를 시인하고 현장의 실태를 언급한 것은 의미 있는 진전이다. 그러나 긴 질의응답 과정에서 드러난 정부의 태도는 신속한 해결 의지보다는 입법부에 책임을 전가하는 방임의 연속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이 공허한 수사에 그치지 않으려면 실질적인 행동이 뒤따라야 한다.
‘입법 공백’은 행정의 무능과 정치를 가리는 비겁한 핑계이다.
식약처는 지난 수년간 “사용 가능한 임신 주수를 정하기 위해 대체 입법이 필요하다”는 궤변으로 허가 심사를 보류해 왔다. 유산유도제의 사용 주수는 법률 조항이 아니라 임상 데이터와 과학적 안전성을 바탕으로 결정되어야 하는 사안이다. 전 세계 95개국 이상이 이미 허가한 필수의약품을 두고 입법 미비를 핑계 삼는 것은 국가가 여성의 재생산권을 여전히 통제하겠다는 낡은 관습의 연장선이다. 성평등가족부와 식약처가 부처 간 합의와 법적 근거만을 운운하며 시간을 끄는 사이, 여성들은 온라인 암시장의 위험으로 내몰리고 있다.
거대 여당 민주당은 압도적 입법 권한을 어디에 쓰고 있는가?
2019년 문재인 정부 이래 더불어민주당은 국회 내 절대 여당으로서 무소불위의 입법 권한을 행사해 왔다. 정쟁에는 전쟁도 불사할 것처럼 화력을 집중하는 민주당이, 정작 여성의 생명과 직결된 모자보건법 개정안은 수년째 서랍 속에 방치하고 있는 현실은 기만적이다. 입법 권력을 쥐고서도 사회적 낙인과 갈등을 핑계로 뒷짐만 지고 있는 민주당의 행태는 명백한 직무유기이자 여성 유권자에 대한 배신이다.
대통령은 입법부에 책임을 넘기지 말고 직접 협조를 요청하라.
이재명 대통령은 민주당의 전직 대표이자 국정 수장으로서 거대 의석을 가진 민주당에 즉각적인 입법 협조를 요청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업무보고에서 입법부의 방임을 지적하는 수준에 그치고, 민주당을 향한 구체적인 결단이나 당정 협의를 강력히 촉구하지 않은 것은 매우 실망스럽다. 대통령이 진정으로 현실의 불합리성을 타파하고자 한다면, 민주당에 유산유도제 도입과 건강보험 적용을 위한 법안 처리를 당.론으로 채택할 것을 즉각 요구해야 한다.
여성의 자기결정권은 대통령의 한숨이나 국회의 고민만으로 보장되지 않는다. 이재명 대통령은 '불합리' 지적을 넘어, 민주당에 즉각적인 입법 협조를 요청하고 정부 차원의 적극 행정을 지시하라. 더불어민주당은 압도적 의석을 정쟁에만 소모하지 말고, 여성의 건강권을 보장할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즉각 통과시켜라. 식약처는 법적 근거 없는 ‘입법 핑계’를 중단하고, 유산유도제에 대한 허가 심사를 즉각 완료하라.
우리는 국가가 허락한 사유를 증명해야만 임신중지가 가능했던 야만의 시대를 끝내고자 한다. 정부와 국회는 더 이상 ‘입법 공백’이라는 비겁한 그늘 뒤에 숨지 말고,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공공 보건의료 체계를 조속히 구축하라.
2025년 12월 22일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