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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학

장봉석 /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이사 는 칼럼 을 통해 통합돌봄시스템, 어떻게 만들 수 있나?

 

통합돌봄시스템, 어떻게 만들 수 있나?

 

현대 복지국가가 직면한 가장 거대한 실존적 위기는 인구구조의 지각변동에 기인한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이미 노인 인구 1,000만 명, 치매 인구 100만 명의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그러나 위기의 본질은 단순히 ‘돌볼 사람이 많아졌다’거나 ‘돌볼 인력이 부족하다’는 정량적 수치에만 머물지 않는다.

 

더 근본적인 비극은 현장의 종사자들이 정작 돌봄이라는 인간적 교감보다 행정적 기록과 제도적 통제에 영혼을 소진하고 있다는 ‘일의 구조적 모순’에 있다. 현장의 사회복지사들은 묻는다.

 

"나는 돌보러 왔는가, 기록하러 왔는가."

 

평가 등급을 유지하기 위한 방대한 문서 작업, 지도점검, 행정조사, 돌봄사고, 그 밖의 다양한 규제 위반을 피하기 위한 방어적 행정은 돌봄을 따뜻한 헌신의 영역에서 피로한 관료제적 노동의 영역으로 추락시켰다. 돌봄을 위해 만들어진 제도가 오히려 돌봄을 옥죄는 복지의 역설, 이 분절되고 파편화된 위기 속에서 우리는 돌봄의 개념을 근본적으로 다시 질문해야 하는 역사적 임계점에 서 있다.

 

돌봄은 서비스가 아니라 ‘사회운영체제’다

 

필자는 최근 ≪디지털 케어-돌봄은 어떻게 설계되는가: Care Orchestration≫이라는 책을 출간하였다. 이 책이 던지는 핵심 질문은 단순하다.

 

"돌봄은 왜 이렇게 복잡해졌는가? 그리고 돌봄은 어떻게 다시 설계될 수 있는가?"

 

우리는 오랫동안 돌봄을 자선, 가족의 책임, 단순한 복지서비스, 혹은 조치방식에 따라 예산의 범위 내에서만 집행되는 분절된 급여의 형태로 취급해 왔다. 통합돌봄이 그렇듯,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메리 데일리(Mary Daly)의 말처럼, 돌봄은 공공과 민간, 가족과 지역사회가 촘촘하게 얽혀 있는 ‘복잡한 사회적 재화(Complex social good)’다. 무엇보다 초고령사회에서 돌봄은 더 이상 주변적 문제가 아니다.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기 위한 사회의 핵심 인프라다.

 

이 복합 시스템을 간과한 채 대상자를 중심으로 서비스를 쪼개고, 부처 간 밥그릇 싸움으로 전달체계를 파편화한 현재의 구조로는 인간의 존엄을 온전히 지켜내는 전인적 돌봄(Total Care)을 실현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돌봄 체계의 거시적이고 구조적인 전환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서비스 확대가 아니라, 돌봄체계 자체의 재설계다. 이 책에서 구체적으로 다루지는 않았지만 필자는 이를 「Unified OS: Care-Work(통합운영체제: 돌봄-업무)」라고 부른다.

 

이제 돌봄은 헌법이 보장하는 인간다운 생활을 향유할 권리, 즉 ‘사회적 기본권’인 동시에 미래 사회의 영속성을 담보하는 ‘디지털 핵심 운영체제(Operation System, OS)이자 인프라’로 재정의되어야 한다.

 

디지털 기술의 역할

 

많은 이들이 ‘디지털 케어’나 ‘스마트 돌봄’을 이야기할 때, 요양로봇이 노인을 들어 올리거나 AI 스피커가 말동무를 해주는 식의 단편적인 ‘인간대체기술’을 떠올린다. ‘디지털 헬스케어’도 마찬가지다. 특정영역이나 특정문제에 특화된 핀셋기술이라는 근본적 한계가 있다. 그러나 이는 기술낙관론의 함정이자 또 다른 형태의 인간 소외를 부르는 위험한 접근이다.

 

필자는 기술과 돌봄을 대립적 구도로 보지 않는다. 그 대신 완벽한 역할 분담을 통한 상생의 생태계로 바라본다. 기계는 반복적인 행정업무, 반복적인 서비스제공, 복잡한 법적 규제에 따른 기록과 처리, 모니터링, 실시간 데이터 관제를 전담하고, 행정적 부담에서 해방된 인간 돌봄제공자는 돌봄필요자의 눈을 맞추고, 손을 잡으며, 정서적으로 교감하는 ‘존엄한 관계’에 온전히 소진하도록 한다는데 있다.

 

‘기술은 디지털로 채우고, 관계는 사람으로 채우는 구조’의 실현이다. 인간성 중심 돌봄(Humanitude Care), 개인 중심 돌봄(Person-Centered Care), 개별화된 돌봄(Unit Care)과 같은 철학이 차갑지만 두터운 디지털 기술과 만날 때, 그 기술은 인간을 소외시키는 도구가 아니라 인간성을 수호하는 방패가 된다.

 

'케어 오케스트레이션'이라는 발상

 

그렇다면 복잡하게 꼬여버린 돌봄과 일(Care-Work)을 어떻게 디지털 방식으로 재설계할 것인가? 필자는 나름의 현장 경험과 정책에 대한 시각을 바탕으로 ‘6W1H’ 기반의 행동 디자인(Behavioral Design, BD) 모델을 제시한다. 모든 돌봄 행위는 결국 7가지 질문으로 환원된다는 것이다.

 

Care = f(Who, Whom, What, Why, When, Where, How)

 

분절된 제도, 분절된 대상, 분절된 업무, 분절된 서식으로 흩어져 있던 돌봄의 동선을 표준화하면, 복잡했던 일은 놀라울 정도로 단순한 데이터의 흐름으로 바뀐다. 여기에 사용자의 정보 즉, 행위패턴인식(Behavior Pattern Recognition, BPR)이라고 부르는 이용자 데이터를 결합하면 행동설계 기반의 통합돌봄시스템(Behavioral Design-driven Integrated Care System, BD-ICS)이 완성된다.

 

이 안에서 돌봄은 정형화된 ‘업무흐름(Workflow)’ 중심으로 재조직된다. 법령이나 규정을 근거로 돌봄제공자의 행동을 안내하고(Norm-Action), 청구와 서식 등 행정데이터가 시스템 밑단에서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가면, 서비스의 연속성, 투명성, 실시간성은 자연히 확보된다. 이는 수많은 악기가 지휘자의 손끝에서 하나의 완벽한 교향곡을 연주하듯, 분절된 복지 자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케어 오케스트레이션’이 구현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표준화된 돌봄은 단순한 감정노동이 아니라 구조화가 가능한 시스템으로 전환된다. 시스템은 돌봄제공자의 일상을 180도 바꿔준다. 책상에 앉아 문서작성과 청구업무, 일정관리에 수많은 시간을 허비하던 과거에서 벗어나게 된다. 오늘 해야 할 일이 스마트폰에 자동으로 할당되고, 복잡한 서류는 시스템이 알아서 생성한다.

 

이 변화는 고스란히 가족의 안심으로 이어진다. 기존에는 돌봄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지만, 이제는 제공되는 서비스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자동으로 업데이트되는 활동계획과 결과를 공유받는다. 기술이 일상적인 행정 업무를 완벽히 대행해 주기에, 돌봄 직원은 오롯이 이용자의 정서적 · 임상적 요구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된다.

 

행정은 자동화되고, 기록은 실시간으로 연결되며, 돌봄제공자는 다시 사람 곁으로 돌아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기술 자체가 아니다. 핵심은 기술을 통해 인간의 시간을 다시 인간에게 돌려주는 데 있다.

 

미래도시의 핵심은 ‘스마트’가 아니라 ‘돌봄’이다

 

때문에 이 논의의 종착지는 단순한 요양시설의 현대화나 개별 가정의 스마트홈 구축에 머물지 않는다. 무인병원 ․ 무인시설과 같은 지엽적 논의를 넘어 돌봄의 연속성(Continuum Care)을 도시 전체의 인프라로 확장하는 ‘스마트 웰페어 시티(Smart Welfare City)’라는 비전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준다.

 

기존의 스마트시티 담론은 교통, 에너지, 방범 등 철저히 하드웨어와 물리적 효율성 중심으로 논의되어 왔다. 그러나 인간이 배제된 도시는 거대한 콘크리트 미로에 불과하다. 진정한 미래 도시는 삶의 가장 취약한 순간, 즉 질병과 노령의 순간에도 내가 살던 익숙한 공간에서 존엄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는 지역사회계속거주(Aging in Place, AIP)가 완벽히 보장되는 공간이어야 한다.

 

이를 가능케 하는 핵심이 바로 통합운영체제(Unified OS)다. 예를 들어 낙상, 배회, 생활 이상과 같은 상황이 발생하면 시스템이 집 안의 모든 스마트 기기를 유기적으로 조정하기 시작한다. 어르신의 의식 여부나 휴대전화 소지 여부, 응답 가능 상태를 인공지능이 스스로 판단하여 가장 적절한 비상 대응 절차를 시작하는 것이다. 지정된 보호자나 응급구조 기관에 현재의 건강 상태, 위치, 의료 정보가 실시간으로 자동 전송되며, 이 모든 과정은 규정에 맞춰 문서로 기록되어 향후 돌봄 계획에 즉각 반영된다. 인간의 실수나 공백 없이 더 빠르고 안전한 24시간 밀착 관리가 도시 전체에서 구현되는 셈이다. 중요한 점은 이것이 AI 기술의 결과가 아니라 ‘구조화된 Care에 AI를 반영한 결과’라는데 있다.

 

돌봄(Care)는 구조화가 가장 어려운 영역이다. 그래서 구조화된 돌봄은 생산, 고용, 행정, 교육과 같은 부문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돌봄-업무(Care-Work)가 생산-업무(Product-Work), 기업-업무(Enterprise-Work), 행정-업무(Administrative-Work), 교육-업무(Education-Work) 등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것이다. 스마트 웰페어 시티는 그런 의미다.

 

하지만 이는 결코 기술 만능주의에 기반한 낙관론의 결과가 아니다. 고령화와 인구소멸이라는 범인류적 재앙 앞에서, 도시의 생존을 위해 복지와 기술을 결합하는 가장 전략적이고 구조적인 생태계 재편이다.

 

이제는 돌봄을 ‘구조’의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

 

우리는 오랫동안 돌봄을 헌신과 희생의 영역으로만 이해해 왔다. 그러나 초고령사회에서 돌봄은 더 이상 개인의 선의만으로 유지될 수 없다. 이제 돌봄은 감정의 영역을 넘어 구조의 영역에서 다시 설계되어야 한다.

 

행정과 업무는 기술이 맡고, 사람은 사람을 돌보는 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 사회가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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